데이터 테일러리즘의 도래?

너희들이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었으면, 나와 처음부터 계약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나는 내일부터 너희들의 작업량을 반으로 줄이고 임금을 반으로 깎겠다. 그러나 너희들이 공정한 하루의 작업을 행한다면, 지금 받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프레데릭 테일러, 1912; 해리 브레이버맨, 1998에서 재인용

테일러리즘의 그 테일러가 관리직으로 있으면서 근로자들을 상대하면서 한 얘기. 미국 하원 청문회인가에 나와서 자신이 소개한 일화임. 브레이버맨에 따르면 테일러리즘은 크게 세 가지 원리로 나눠볼 수 있는데, 이게 IT기업들이 단순노무를 관리하는 방식과 근로자 지위 관점에서 생각해 볼 만함.

  • 1원리: 노동자의 기능으로부터 숙련기술과 지식을 분리시키고
  • 2원리: 노동에서 구상과 실행을 분리해 구상을 기업의 관리 부문에 집중시키고
  • 3원리: 이를 통해 노동에 대한 지식을 독점해서 노동과정과 행위를 통제하는 것

말이야 그럴 듯해도 이 구상은 현실적으로 두 문제를 맞닥뜨림. 먼저 관리자들이 실무의 최적화를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불분명함. 테일러도 최적화한답시고 실컷 뽐냈지만 그 과정에서 뻘짓한 게 수두룩. 또 설사 최적화에 성공해도 그 레벨의 노동을 근로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이냐의 문제가 있음.

내가 보기에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게 앞서 말한 ICT 기술과 데이터 수집·처리 방법의 발달. 업무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극도로 쪼개 단순하게 만들고, 작업의 전과정을 측정가능한 지표로 환산해서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줌. 결국 이게 2가지 문제를 해결해줌.

MBC뉴스. (2021. 1. 15.). [탐정M] “쿠팡은 속도에 환장한 회사입니다”.

기사에 나오는 빨간조끼 입은 관리자들이 빽빽 소리지르고 하는 게 시끄러워 보여도 사실 본질은 저 뒤에 밑바탕이 되는 분업과 작업 기록/추적 시스템(물론 언어폭력이나 이런 건 또 다른 문제). 그냥 분업만 시켜놓고 관리직들한테 직접 일하는 사람들 붙잡고 관리 감독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함.

내가 보기에 이게 만들어내는 문제는 2가지인데, 먼저 근로자의 교섭력이 굉장히 축소된다는 것. 당연하지만 업무가 단순해지고 언제든 대체가 가능해지면서 발생하는 문제임. 이건 또 세 가지 결과를 낳는데, 낮은 임금 / 낮은 고용안정성 / 사실상 항의(voice)의 수단이 형해화되는 것.

두 번째 문제는 시스템이 구상과 관리를 상당 부분 맡게 되면서 이게 결국 근로자의 자기결정으로 귀결됨. 쿠팡식으로 말하면 어쨌든 사람들이 자기가 선택해서 한 업무 아닙니까 되는 거고, 배달식으로 말하면 자기 오토바이 갖고 와서 배달 건 하겠다고 수락한 사람도 배달원이다 되는 것.

이게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건 아예 법적 지위마저도 개인사업자로 돼버리는 경우. 이러다 보니 ‘자기 선택’으로 배달 엄청 뛰는 사례가 생기는데 이게 본인 위험도 높이고 사회 전체의 위험도 높임. 도로에서 교통법 안 지키는 배달 오토바이 때문에 사고날 뻔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림.

쿠팡 물류센터도 마찬가지인데, 수준 이하의 노동환경이나 지나친 과로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비용이 분명히 있음. 가령 저래서 생기는 건강 악화는 건강보험 재정에 전가되는 것. 결국 데이터 테일러리즘으로 (일종의 음의 외부성이 발생해서) 사회적인 최적 수준보다 과공급되는 상황일 수 있는 것.

매번 문제 터지고 사회적 합의 형식으로 둑 샐 때마다 막아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뭔가 다른 해법이 있을 듯한데 쉽사리 잘 안 떠오름. 여튼 뭔가 새로운 형태처럼 보여도 사실은 테일러리즘이라는 오래된 미래라는 생각이 듦. 테일러가 부활하면 이런 게 사실 자기가 꿈꾸던 거였다고 좋아할 것.

플랫폼 노동(그리고 개인사업자 문제)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최근에 나오는 솔루션 중 하나는, 특수성 인정하면 안 되고 그냥 전통적인 근로자 지위로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법해석의 문제라는 것. 옥스포드 교수인 아담스-프라슬이 쓴 책이 있는데 한국어로도 번역됨.

근데 테일러리즘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쿠팡 물류센터 같은 단기계약직은 이런 해법과는 차이가 있음. 이게 사회적 최적 수준보다 높은 생산의 문제라면 흔히 생각해 볼 수 있는 pigovian taxation도 있는데 실현가능성은 없고, 이 경우는 그냥 전통적인 근로감독과 민사상 손배소 활성화가 답?

참고문헌

  1. 해리 브레이버맨. (1998). 노동과 독점자본(이한주 옮김).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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