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줄타기: 의사 저널리스트를 위한 윤리적 기준(A Delicate Balance: Ethical Standards for Physician-Journalists)

강서구 사건에 관한 모 의사의 글을 읽었다.

아무리 사회적 관심사안이고 공익을 위한 의도가 있었다 해도, 자신의 환자를 그렇게 다루면 안 됐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극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유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절박한 생의 순간에 의사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았던 망자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인간적 품위의 문제다.

그는 서두에 공익을 위한 일이라며 변호했지만, 도대체 그 글 덕분에 어떤 공익이 증진됐는가? 글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분노한 나’에 대한 전시와 통념에 기대는 허약한 비판뿐이다. 결국 인구에 남아 떠도는 것은 피해자의 참상이다. 구체적으로 그가 얼마나 잔혹하게 죽었는가 하는…

아래는 미국의사협회 의료윤리 학술지(AMA Journal of Ethics)에 실린 글이다.


[원문] Tom Linden, MD. (2011). A Delicate Balance: Ethical Standards for Physician-Journalists. Virtual Mentor, 13(7), pp. 490-493.

의사인 동시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두 종류의 전문직이 요구하는 윤리적 규준, 그것도 종종 서로 상충되곤 하는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들이 그들의 환자들에게 “부정의하거나 위해를 끼치지 말 것”을 요구하고, 그들의 환자들의 “삶에 대해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비밀을 지킬 것”을 명합니다.

저널리스트들은 종종 자신이 찾아낸 비밀을 지키기보다는 반대의 행동을 취합니다—그들은 전문저널리스트회(SPJ, the 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가 이르는 바와 같이 “공공 계몽”의 견지에서 그 정보와 뉴스를 다양한 청중에게 퍼뜨립니다. 윤리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 저널리스트는 어떤 내용에도 우선하는 전문저널리스트회의 윤리헌장의 네 가지 원칙에 충실해야 합니다: 진실을 추구하며 보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그리고 책임있게 행동할 것.

이런 충돌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는 바로 의사들이 그들의 환자를 글감으로 삼을 때입니다. Awakenings과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에서,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잘 엮어서 흡입력 있는 서사로 만들어냈는데, 그 이야기 중 많은 것들은 의학 학술지와 The New York Review of Books나 London Review of Books와 같이 유명한 매체에 동시에 실렸습니다. 외과의사 Atul Gawande는 The New Yorker 지와 Slate 지에 일반 대중을 위해 쓰인 (나중에 그의 책 Complications에 실린) 이야기를 싣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 “의사가 실수할 때When Doctors Make Mistakes”에서, Gawande는 환자와 의료진을 비밀로 하기 위한 그의 주의에 대해서 썼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나는 실제 일어난 일에서 (관계된 이들의 이름을 포함한) 세부내용을 약간씩 바꿔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환자와, 나 자신과, 나머지 의료진을 보호하는 선에서 최대한 실제 사건과 가깝게 기술하도록 노력했다.”

이야기꾼인가, 저널리스트인가?

어떤 이들은 Sacks와 Gawande는 이야기꾼이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고유한 시각과 견해를 보여주고 있고, 자신의 목소리나 (어떤 경우에는) 편견을 드러내는 데 있어 어떠한 핑계도 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널리스트와 같이, 그들은 진실을 추구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또 그들의 글에 대해 독자와 편집자들에게 책임을 집니다. 2009년 The New Yorker 지에 실린, 의료비용에 있어서의 지역적 편차에 대해 다룬 Gawande의 글은 뉴욕의 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의 한 의사가, 그 글에 인용된 연구자가 사용된 방법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그의 분석을 변론하기 위해서 Gawande는 The New Yorker 웹사이트에 반박에 응답했습니다.

지면 상에서 의사 저널리스트들은 그들이 데려오는 환자의 정체성을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익명성을 추구하기 위한 세부 내용들은 논픽션과 픽션 사이의 회색지대에 글을 밀어넣게 됩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아주 상세한 대화는 독자의 신빙성을 높입니다. 몇 년 전, 제 학생 중 한 명은 한 의사 저널리스트가 이야기 속에 삽입한 긴 단락의 대화에 의문을 표하면서 어떻게 그가 사무실에서 그와 환자가 대화한 말 하나하나를 녹음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저자로부터의 답변은 난처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대화로부터 느껴지던 인상에 기반해 그 단락을 작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윤리적으로 봤을 때 그런 기준은 의료 사례 보고서를 위해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저널리즘에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독자들은 인용된 내용이 말한 그대로 사실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전문 영역이 달라지면, 우리는 다른 기준을 요구받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와 이야기를 풀어놓는 의사들은 다른 종류의 도전에 직면하는데, 특히 — 보통 환자들의 — 얼굴을 이야기에 어떻게 넣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서 그러합니다. 제가 정신과 의사로 수련을 받고 텔레비전에 나와 의학에 관한 내용을 보도하는 커리어를 시작할 때, 저는 텔레비전에서 저를 보고 찾아온 환자와는 절대로 상담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거꾸로 보자면, 제가 수련 중 만나는 환자에 대해서는 텔레비전 보도에서 절대로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쇄 매체에서 환자의 정체성을 숨기는 건 가능한 일이지만, 실루엣만 드러내거나 음성변조된 목소리나 모자이크된 얼굴은 텔레비전에서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습니다.

착취라는 유령

그 자신의 환자를 이야기에서 사용하는 것은 설사 환자가 자신의 정보를 드러내거나 인터뷰하는 데 동의했다 하더라도 ‘착취라는 유령’을 배회하게 하는 일입니다. 환자들은 혹시라도 진료 거부를 당하거나 전문적 서비스를 받는 데 있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싶어 의사 저널리스트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사이의 환계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입니다: 의사는 의학에 관해 우월적인 지식을 갖고 있고, 그들의 환자의 사적인 내용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상처받기 쉽거나 두려워하는 이들을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사 저널리스트가 2010년 아이티에서 벌어진 지진이나 일본에서 일어난 쓰나미나 핵 발전소 사태와 같이 재난의 현장에서 보도할 때 위의 내용은 사실일 것입니다. 아이티에서 지진이 일어난 지 며칠되지 않았을 때, 미국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대부분의 뉴스 방송사 — CNN, CBS, NBC 그리고 ABC나 기타 방송사 — 에서 의사 저널리스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장에서 사람들을 돕고 있었고 많은 경우 그들이 돕는 사람들에 대해서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제가 일부 의사 저널리스트들이 그들이 상대하던 취약한 이들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에 관해 의문을 품게 만들었던 에세이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CNN의 수석편집자이자 부회장이던 Richard T. Griffiths는 그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 “아이티에 있었던 모든 CNN 팀과 같이, Sanjay Gupta는 세계에 전례없는 재난을 전하기 위해 저널리즘의 가장 높은 기준을 준수했습니다. 그의 의학적 전문지식은 CNN의 보도에 있어 특별한 맥락과 깊이를 더했습니다.”
  • “의사로서, Sanjay Gupta는 의료 전문직에 요구되는 가장 높은 기준을 준수했으며, 연민과 숙력을 갖고 환자를 대했습니다. 이것은 전문직업의식의 발로로서 — 의사이든 저널리스트든 간에 —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윤리적 원칙에 대한 안내

아이티 지진 사태의 여파를 보도하는 데 있어서, 의료저널리스트연합(the Association of Health Care Journalists)은 의료 통신원으로 구성된 임시 조직 — 그곳은 제가 회원으로 참여한 바 있습니다 — 을 소집했는데, 이는 “비탄에 빠진 이들”을 보도함에 있어서 안내가 될 만한 원칙을 공식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은 부분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품위decency는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그들이 안심하게 만들도록 재촉하지만, 통신원들은 그러한 행위로부터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되며 그들이 돕는 이들을 착취해서도 안 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가이드라인은 동의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 저널리스트에게 도움을 받는 비탄에 빠진 사람들은 저널리스트의 일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저널리스트가 도움을 주었다면, 그들은 이야기를 위해서 (도움을 준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때로는 훌륭한 일이기도 하지만, 유명세가 금전적인 보상을 가져다 주는 언론 보도 환경 속에서는 저널리스트의 도움과 노력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저널리스트의 사적 이익을 높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용주의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며, 그것은 공익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어느 현장에서든 환자에 대한 착취를 피하기 위해서는, 의사 저널리스트는 반드시 다음의 규정들을 준수해야 합니다. 먼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겁박 등이 없이 행해진 동의가 있지 않는 이상 여러분 자신의 환자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삼가십시오. 두 번째, 여러분이 쓴 이야기가 그 글에 등장할 환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지 예민하게 살피십시오. 만약 환자가 프로필을 제공하는 데 동의하더라도, 다른 이야기를 사용하기를 고려해 보십시오. 세 번째, 절대로 여러분의 환자 중 독자, 청취자, 혹은 시청자가 그 개인이 누군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드러내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의료저널리스트연합이 비탄에 빠진 이들을 도우는 일에 관해 온라인으로 선언한 바와 같이, “이득이나 명예를 위해 취약한 이들을 착취하지 마십시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